金德圭가 드리는 아침 소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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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2-05 12:40
아홉 번째 해외의료봉사(2011년 겨울) 후기(3): 인도네시아 먼따와이제도
글쓴이 :
金德圭
조회 : 1,594
2011년 1월 27일(목) 아침 흐림.
잠에서 깨어나니 숙소 주위에서 우는 온갖 새소리가 들린다. 새가 우는 소리에 잠을 깼다는 문학적 표현은 아마 이럴 경우에 쓰이는가 보다. 깊은 수면을 취한 까닭에 몸이 가볍게 느껴진다.
오전에는 신학대학 학생들을 위한 강의만 있었고 진료 봉사는 없었다. 점심 식사 후 선교사님은 우리들에게 장화를 한 켤레씩 내어 놓았다. 우리들은 약간 어리둥절하였다. 이곳에서 선교하다고 순교했던 August Lett 선교사의 무덤에 가려면 장화를 신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는 길이 개흙으로 되어 있어 장화를 신지 않고는 신발과 옷을 버린다는 것이었다. 정말 오래간만에 검은 고무장화를 신어 보았다. 발이 꼭 끼이면 물집이 생길 수 있으므로 가능하면 발이 들어가도 여유가 있는 넉넉한 크기의 것을 신어야 한다고 우리 단원 중에 누군가가 말하였다. 봉사단원은 모두 장화를 신고 숙소를 나섰다.
신학대학의 정문을 나서서 마을로 향하는 길로 들어섰다.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아담한 콘크리트 집 한 채가 있었는데 다른 집과 달리 철골 안테나가 높이 서 있었다. 이 지역의 방송국이었다. 그 아래로 언덕을 내려가니 주위에 자그마한 중학교가 있었다. 학교의 건물은 매우 낡았는데 제때 수리를 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학교에서 보면 아래 한 쪽 편에는 마을이 있었고 또 한 쪽 편 길 너머 한 참 저쪽에는 바다가 보였다.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본격적인 개흙 길로 변하고 있었다. 우리 앞 에 자그마한 야산이 나타났다. 그 야산의 중턱에 조그마한 화단이 조성되어 있고 그 주위에 몇 개의 비석들이 있었다. 그 비석 중 하나 앞으로 우리들은 다가갔다.
비석은 십자가 모양으로 깎아져있었고 약 끝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문양이 부조처럼 만들어져 있었다. 십자가의 중앙에 독일어로 다음과 같은 비문이 쓰여 있었다.
Missionar
August Lett,
geb. den 4. Sept. 1861, gest. den 20. August 1909.
현지 선교사님 August Lett 선교사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었다. August Lett 선교사는 원래 독일 루터교회 소속 목사였는데 인도네시아에 선교하러 왔다가 이 섬에 오게 되었다. 그런대 선교사의 사역을 좋게 여기지 않았던 원주민 추장은 이 선교사를 죽이고 말았던 것이다. 선교사가 죽은 후 이 지역에서 발생한 이름 모를 병에 걸려 많은 원주민이 죽었던 것이다. 추장은 원주민들의 몸에 병이 생긴 것은 무고한 선교사를 죽여서 벌을 받았다고 생각하여서 자신의 죄를 깊이 뉘우쳤는데 그 이후 사람들의 병이 낫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추장이 솔선하여 그 동안 믿어왔던 미신을 버리고 선교사가 전한 기독교를 믿었고 이어서 원주민 모두가 다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August Lett 선교사의 순교는 결국 헛되지 않은 것이다. 비록 그는 무지몽매한 추장의 칼에 참수되었지만 그가 흘린 피 한 방울, 방울은 이 땅에 떨어진 밀알이 되어 많은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하는 열매를 맺은 것이다.
저녁을 일찍 먹은 후 우리들은 숙소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모라의 집에서 진료 봉사를 하였다.
모라의 집은 바닷가에 가까이 있었고 또한 바로 집 앞에 마을로 연결되는 길이 지나가고 있었다.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중간지점이자 사랑신학대학과 주위에 인접해 있는 중학교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러한 곳에 있는 까닭으로 모라의 집은 사람들이 쉬어 가는 곳이었다. 도로변에 베란다 용도로 쓰이는 공간이 있었는데 이곳은 기둥과 처마만 있었고 집과 연결된 벽만 제외하고는 다 개방되어 있었다. 우리들은 이곳에 노천 간이 진료소를 세웠다. 약국은 모라의 집 거실 바닥에 차렸다. 모라 가족이 키우는 개가 그 옆에 보란 듯이 드러누웠다. 벽에는 도마뱀이 점잖이 기어 다녔다.
어두워서 전선을 연결하여 불을 밝히니 근처에 있던 모든 나방이란 나방이들이 다 달려들었다. 유일하게 밝은 불이 켜져 있으니 어찌 날아들지 않겠는가? 지금도 진료를 어떻게 보았는지는 모르겠다. 끊임없이 달려드는 나방이들을 쫒아내던 기억이 오히려 생생하다. 선교사님 역시 통역하랴, 나에게 달려드는 나방이를 쫓아 주랴 많이 바빴다.
우리들은 그 곳에서 청색증이 심한 심장병 어린이를 만났다.
사내아이는 아홉 살 정도 되어 보였는데 아버지가 데리고 왔다. 어릴 때부터 자주 아팠는데 요즈음은 열 걸음도 걷는 것을 힘들어 한다고 한다. 청진하니 심잡음이 쑥쑥 들렸다. 선천성 심장병중 청색증을 동반하는 활로 4징(Tetralogy of Fallot)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청색증이 심하였다.
아이의 아버지에게는 수술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하자 무척 실망하는 모습을 보였다. 수술이 가능하냐고 물었기에 수술 성적이 좋은 한국에서도 성공률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 해 주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를 살리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 물론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보다는 아이의 남은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는 듯하였다.
만약 어떻게 해서라도 그 아버지가 아이를 살리려고 하는 의지만 보였어도 우리들은 모든 방법을 강구하였을 것이다. 우리 들이 도와 줄 수 있다는 뜻을 비쳤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기대하지 않는 눈치였다. 사실 아이의 증세가 그렇게 까지 심하지 않았어도 우리는 적극적으로 권유하였을 것이다.
지금도 아쉬움이 많은 남는다. 그 아버지에게 한국에 데려가서 수술을 하면 아들을 살릴 수 있다고 적극적으로 권유하였으면 우리들의 권유를 받아들였을까?
만약 우리들의 권유를 받아 들여 우리나라에 와서 심장 수술을 받게 되었다면 과연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살리려고 데려와서 수술하였는데 수술 결과가 좋지 않아서 아이가 죽었다면 그 아버지는 이 모든 과정을 이해하고 우리들에게 애써주어서 고맙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아이가 잘못되었을 때 여기서 좋은 평판을 쌓아 놓은 선교사의 그 모든 업적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아, 이 딜레마(dilemma)를 누가 헤아려 줄 수 있는가?
남을 도와주는 좋은 일을 하기가 이렇게 힘든데도 우리는 이러한 일을 계속 고민하면서 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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