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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1-26 15:09
사도 요한의 편지, 위대한 서두
 글쓴이 : 金德圭
조회 : 1,541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계1:4)


사도 요한은 편지를 한 통 썼다. 그 편지에는 차라리 책이라고 불러야 될 정도로 많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 편지는 소아시아 지방에 있는 일곱 교회로 보내어 회람될 것이었다. 그 편지형식으로 쓴 책이 바로 <요한계시록>이다.

인사말에 나타난 삼위 하나님(4-5절):

그 편지 안에는 수많은 계시가 담겨 있다. 그 모든 계시가 다 중요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하나님 자신에 대한 계시일 것이다. 아주 특이한 것은 편지의 서두 인사말에 삼위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계시가 드러나 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다음과 같은 분으로 서술하였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

또한 성령님을 다음과 같은 분으로 표현하였다.
“ 그의 (하나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다음과 같은 분으로 선언하였다.
“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삼위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계시는 사도 요한이 썼던 요한복음에는 잘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계시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 계시는 요한계시록 전반에 걸쳐 다시 나타나서 이 책의 중요 주제가 될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사실 이 놀라운 새로운 진리를 깨우치는 것만으로도 글쓴이에게는 벅차다. 아니 이 계시만이라도 정확하게 이해하고 믿는다면 더 무슨 계시가 필요하겠는가? 구약과 신약의 모든 약속과 복들이 이 계시 안에 다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다면 과장된 발언일까?

이 들 계시 중 가장 놀라운 것은 사도 요한이 하나님을 “장차 오실 이”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언제 오셨는가? 하는 어리석은 질문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언제 떠나셨는가? 하는 질문은 해봄직한 질문이라고 생각된다.

신학자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답을 할지 모르지만 이에 대한 글쓴이의 답으로 에스겔서 10장 18-19절을 제시하고자 한다.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 그룹들 위에 머무르니 그룹들이 날개를 들고 내 눈 앞의 땅에서 올라가는데 그들이 나갈 때에 바퀴도 그 곁에서 함께 하더라 그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동문에 머물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덮였더라

이 말씀은 성막 안 지성소에 계시면서 하나님의 백성들과 동거해 오셨던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람들로부터 떠나시는 아주, 아주 슬픈 장면을 우리들로 하여금 목도하게 한다.

그렇게 떠나셨던 하나님께서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을 계시로 선포하신 것이다. 놀라운,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복음을 우리가 받고 있는 것이다.
할렐루야!

또한 사도 요한은 우리 주님을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선언적 메시를 남겼다.  주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로마 제국의 유대 총독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형을 언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 그러나 지금은 역사적으로 존재해 왔던 그 모든 제국의 황제들과 왕들의 통치자 이신 것이다. 왕들 중의 왕이신 것이다. 이 놀라운 지위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할렐루야!

이 놀라운 복음을 가슴에 품는다. 아니 그것만으로 부족한 것 같다. 가슴에 새긴다.
복음이 내 속에서 힘이 된다. 이 복음은 연약하고 유약해보이기만 하는 지상 교회에 새로운 활력이 될 것이다. 교회가 해체되어 존재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북한 전역에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주님께서 삼대 세습 정권의 그 악한 권력을 깨뜨리시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믿음이 나로 하여금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게 한다. 그 믿음을 붙잡고 오늘도 여전히 기도하는 것이다.

인사말, 은혜와 평강(5절):

죄악이 관영하고 하나님의 의가 무시되고 거부되는 세상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신실한 주님의 종들은 그들이 어디서 살든지 매일 매일 순교자적 삶을 살아가게 된다. 로마 제국으로부터 엄청난 박해를 받았던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어쩌면 그들보다 더한 핍박을 받고 있는 북한지하교회 성도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 고달픈 삶에 무엇이 위안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의 그 어떤 것이 참다운 위로가 될 수 있겠는가? 혹 잠시 동안은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영속적일 수 있을까?
결국 주님이 주시는 은혜, 주님이 주시는 평강이 아니고는 어떤 것이 진정 도움이 되겠는가?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은 인사말을 남겼다.
“은혜와 평강이 너희들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이 인사말은 의례적인 인사말을 이미 넘어선 축복이요, 격려요, 갈급함을 채워주는 생수 같은 것이다. 그는 그 은혜와 평강을 자신이 줄 수 없는 것임을 잘 알았다. 그는 그 은혜와 평강의 근원을 분명히 밝혔다. 은혜와 평강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으로부터 온 것 이었다.

주님이 지상에 계셨을 때는 “은혜와 진리” (요1:17)시대였다면 주님이 천상에 계시고 “또 다른 보혜사”(요14:16)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그 때는 “은혜와 평강” 의 시대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당시 일곱 교회에게 꼭 필요한 것이 “은혜와 평강” 이라면 이 놀라운 복은 오늘날 지구촌의 모든 교회에도 여전히 필요한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우리들이 받을 그 은혜와 평강을 핍박받고 있는 세계 교회와 북한 교회가 먼저 받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영광을 받으실 그리스도(5-6절):

주님을 우리가 찬양한다는 것은 정말 기쁘고 즐거운 일이다. 사도 요한이 주님께 드렸던 찬양을 찬찬히 들여다보자. 그는 다음과 같이 찬양하였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이를 나의 기도로 응용해 본다면 나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셨으며 놀라운 지위를 주신 주님께
영광을 드립니다가 될 것이다. 이 사도 요한의 찬양에도 놀라운 복음과 계시가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그것 하나 만으로도 엄청난 복이요 기쁨이요, 행복이요, 행운이요, 넘치는 사랑인데 그 위에 구원을 덤으로 받은 것이다. 사실 덤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또 하나의 사랑인 구원을 받은 것이다. 사랑과 구원은 함께 가는 것 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구원을 동반하지 않는 사랑은 이기적인 사랑임에 분명할 것이다.
내가 받은 복이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나에게 새로운 지위가 부여된 것이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한 나라 즉 천국에 속한 한 나라, 천국의 일원인 한 나라로 세워 주신 것이다. 또한 제사장의 직분을 주신 것이다. 이 모두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단 두 마디 말 밖에 없다. 놀라운 은혜!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 자를 영원토록 찬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주님이 항상 영광을 받으시도록, 주님의 능력이 영원하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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