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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7-15 08:00
인내의 말씀을 지킨 교회
 글쓴이 : 金德圭
조회 : 1,335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3:11)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는 영광의 주님이 보내신 친서를 받았다. 친서를 통하여 주님이 그에게 주신 계시를 받았다. 그것은 주님이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라는 것이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는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할 사이도 없이  놀라고 말았을 것이다. 다른 교회의 사자들은 주님의 칭찬과 격려에 이어서 책망을 받았는데 반하여 그는 복된 약속의 말씀을 먼저 받았기 때문이다.

주님은 그에게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자가 없으리라”라고 하셨다. 이 구절에서 열린 문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사도 요한은 하늘의 열린 문을 통하여 하늘로 올라갔다. 주님이 말씀하신 열린 문은 바로 그 천국의 열린 문을 말하는 것일까.

‘능히 닫을 자가 없으리라’ 하신 말씀은 또 무슨 뜻일까. 혹 이 말씀은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혹은 빌라델비아 교회)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 입성할 것을 예언하는 것인가.

교회의 궁극적인 목표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 즉 천국에 입성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혹은 교회)는 가장 충실하게 임무를 다한 주님의 종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이해가 바른 것이라면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혹은 교회)는 어떻게 해서 이렇게 귀한 복을 받게 되었을까. 이어지는 주님의 말씀 속에 그 이유는 쉽게 드러나 있었다. 그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주님을 말씀을 지킨 것과 또 하나는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한 것 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상식에 속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혹은 교회)만이 칭찬을 받은 것을 보면 당시 교회 성도들은 이 두 가지를 제대로 하기가 매우 어려웠던 환경에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었다.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혹은 교회)가 “주님의 인내의 말씀을 지킨 것”을 기뻐하셨다. 그래서 그(그 들)에게 선물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 선물은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실 것이라는 것이었다.

시험의 때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은 모르지만 그 시험의 때를 면제 받는 것은 실제적으로 무척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빌라델비아 교회는 그 보다도 몇 십 배 아니 도저히 비교될 수 없는 복된 계시를 받았다. 그 것은 “내가 속히 임하리라”는 주님의 예언이요 약속이었다.

이 약속의 말씀은 깨어있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그 의미, 비중, 영향력을 느끼지 못하고 빌라델비아 교회의 계시 속에서 그냥 스쳐지나가는 말씀처럼 들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항이나 기차역 출구에서 마중 나온 사람들이 승객들을 쳐다보고 있다. 승객역시 그 사람들을 마주 보고 걸어 나온다. 그러나 승객이 누군가 마중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고 있었다면 그 마중 나온 사람들 중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알아보지는 못한다. 이와 꼭 같은 이치인 것이다. 독자가 기대하거나 예상하지 못하면 복음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게 되는 것이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가 깨어 있었다면 주님의 친서를 가슴에 품고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드렸을 것이다.

오, 주님
저희가 무엇이관대
이렇게 큰 은혜를 베푸시나이까

저희는 흙입니다.
이런 복된 계시를 감당할 자격도 능력도 없습니다.
주님, 감당할 수 없습니다.
황송합니다.

사실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황제의 친서를 받을 때도 두렵고 떨림으로 무릎 꿇고 받지 않는가. 하물며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주님께서 친히 자신이 속히 오실 것을 예언하시고 약속하시고 계시하고 계시는데…….

이 부분에서 글쓴이는 또 다른 관점의 의문이 생겼다. 사도 요한의 시에 언급된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계 1:7)는 어떤 계시를 근거로 해서 쓴 것 이었을까하는 것이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말씀  “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오르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1:11)일까.

아니면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혹은 교회)가 받은 이 말씀일까.  이것도 아니면 그가 직접 받은 말씀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계 22:20)일까.

사실 어느 것이든지 상관없을 것이다. 이 모두가 다 진실된 말씀이라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이 복음 중의 복음은 사도 요한만이 받은 것이 아니었다. 무수한 주님의 종들이 받은 계시오. 예언이요 약속이었던 것이다.

영광의 주님께서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이라고 언급한 그 일 들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속히 오시는 일인 것이다. 계시록 1장 1절부터 이 말씀을 하시고 싶었지만 그것을 꾹 참고 계시다가 마침내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드러내셨던 것이다. 이를 확대 해석한다면 오늘날 우리 교회, 한국 교회에 주셨던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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