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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2-13 08:48
2014년 12월 13일 국민일보, 북한 주민을 위한 만찬
 글쓴이 : 金德圭
조회 : 1,331  
그곳은 먹을 것이 핍절된 곳이다. 해마다 가뭄이요 홍수다. 배급이 끊어진 지 이미 오래돼 주민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먹을거리를 해결해야 했다.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한 주민들은 식량을 구하기 위하여 국경을 넘는다.

어떤 이들은 강을 건너다 군인들에게 발각되어 총에 맞아 죽기도 한다. 설혹 국경을 넘는 것이 성공한다고 해도 남의 나라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돈을 벌기 위해 당해야 할 그 수모와 치욕은 또 얼마나 가혹한가. 인신매매 당하거나 죽도록 일해주고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쫓겨난다면 식량 구하러 간 엄마와 누나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아이들은 결국 굶어 죽게 된다.

북한 주민의 구원과 북한 지하교회의 안녕을 오랫동안 기도해온 사람들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무수히 해 보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 우리들의 기도 소원을 이루어 주실까.” “내 기도가 굶주림에 처한 그들에게 얼마나 실제적인 도움이 될까.”

우리가 심혈을 다해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북한의 실정을 보면 이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말할 수 없는 핍박과 고난을 당하고 있는 지하교회 성도들을 생각하면 ‘오늘 당장 주님이 오셔서 저 거대 악을 물리쳐 주시기를’ 하는 간구가 저절로 생긴다. 그래서 실제로 주님이 그 땅에 오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도는 사실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간절히 주님의 다시 오심을 간구하지만 복음이 세상 끝까지 다 전해진 상태가 아니기에 주님은 오시고 싶어도 아직은 오실 수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에 아직 구원받지 못한 친척, 친구들이 많이 있기에 오히려 주님의 재림을 늦추어 달라고 간구해야 할 형편인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북한을 위해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딜레마다.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에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 3:11)고 말씀하셨다. 이어서 라오디게아 교회에는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고 말씀하셨다. 필자는 두 교회에 주신 이 말씀 사이에 약속의 점진적 성취를 발견한다. 속히 오시리라고 약속하신 주님께서 이제는 정말 오셔서 문 밖에 서서 두드리고 계시는 것이다. 이러한 필자의 성경 해석이 틀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앞서 언급한 그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복음이 땅 끝까지 아직 전해지지 않았고, 내 사랑하는 이들이 아직은 주님을 믿고 있지는 않지만 주님은 심판주가 아닌 만찬의 주빈으로 우리들에게 찾아오시는 것이다.

지금 북한 주민들은 공포 정치의 얼음장 위에서 굶주림과 추위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숨어서 예배드리는 지하교회 성도들은 총을 빼들은 인민보위부가 언제 들이닥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인해 더 매섭고 추운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인민보위부의 감시를 단 1분이라도 피할 수 있는 그러한 안전한 곳은 없을까. 잠시라도 좋으니 이 차디찬 칼바람과 눈보라가 완전히 차단된, 얼어붙은 손과 발을 녹일 수 있는 따뜻한 난로가 있는 그러한 방은 없을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한술만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는 그러한 집은 어디 없을까.

그러한 처소가 과연 북한에 존재할 수 있을까. 그렇다. 있을 수 있다. 바로 주님의 만찬장(晩餐場) 바로 그곳이다. 주님은 춥고 배고픈 북한 주민들을 위해 따뜻하고 먹을 것이 풍성한 만찬을 베푸시는 것이다. 불안과 공포가 발붙일 수 없는 그 안전하고 평안한 곳으로 지하교회 성도들을 부르시는 것이다. ‘오소서/ 주여/ 이곳이 아닌 그 곳에/ 우리가 아닌 그들이/ 주님의 만찬을/ 누리게 해 주소서’

김덕규 동아대 의대 교수

출처,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2878735&code=23111413&sid1=mco&sid2=0014

김광섭 14-12-15 08:15
답변  
항상 생각하게 많드는 글을 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북한 주민들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金德圭 14-12-16 14:17
답변  
북한 문제 특히 북한 주민의 굶주림과 아사는 모두가 이야기 하기를 꺼려 하는 것 같습니다.
문제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글을 올리는 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아침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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