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創作) <대통령은 살아 있다>

주(註): 이 글은 저자의 창작물이다. 저자의 상상력의 소산이며 결코 실제 상황이 아니다. 저자는 대통령의 하루 일과를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을 뿐 더러 대통령도 저자에게 자신의 일과를 알려줄 아무런 이유가 없다. 이점을 독자들은 유의하여 읽어주기 바란다. 제목 “대통령은 살아있다”는 대통령이 레임덕(lame duck)을 극복했다는 문학적 표현일 뿐이다.


2012년 4월 14일은 내가 대통령으로 취임한지 4년 2개월째 되는 날 이다.
마침 오늘은 토요일이라 오후에는 혼자 있고 싶었다. 그래서 비서실장을 비롯한 모든 비서들을 모처럼 서둘러 퇴근시키고 홀로 집무실에 남았던 것이다.

창밖에 서있는 목련나무의 꽃은 벌써 졌고 화사한 벚꽃이 그 절정을 향하여 다가가고 있다. 매일 쉴 새 없이  울려대던 비서실의 전화 벨 소리도 오늘 따라 가끔 들릴 뿐이다.
청와대 집무실이 이렇게 조용할 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갑자기, 아니 처음으로 들었다.

19대 총선은 여당이 의석 과반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끝났다.
북한이 인공위성 발사체라고 주장한 대륙 간 탄도 미사일 실험도 정말 다행스럽게 그들의 실패로 끝났다.

모처럼 한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이다.
돌이켜 보면 이렇게 한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들이 정말 이때까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취임 후 해야 할 일들을 빽빽이 적어 놓은 서류 뭉치들을 가방에 넣고 대통령 차량을 타고 청와대로 첫 출근 한 날이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흘러 이제 임기가 8개월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도 이렇게 조용한데 대선이 끝나면 그 때는 정말 절간처럼 조용하겠구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책들을 여기 저기 펼쳐보지만 그 것 뿐이었다.
활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의 입에서 무심코 뱉어진 말,

"레임 덕, 레임 덕이라".

나에게 레임 덕이 이렇게 빨리 올 줄 정말 몰랐다.
이어서 여당이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들은 더욱 더 야속하였다.
역대 어느 대통령 보다 더 열심히 일을 했는데, 나라의 경제를 일으키려고 얼마나 많이 노력하였던가?
국익을 위해서라면 오대양을 건너 육대주에 가서  얼마나 많은 세계 지도자들을 만나서 세일즈 외교를 하였던가?
G20 서울 정상회의와 최근에 있었던 핵안보정상회의 같은 굵직한 세계 정상급 회의를 얼마나 멋지게 성공적으로 잘 치렀는가?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는 또한 어떻고

그러나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대통령에게 인색하였다.
여당도 대선 선거 운동 기간에 접어들자  야당 못지않게 청와대를 향하여 각을 세웠지 않았는가?
총선이 끝나니 국민들과 언론매체들은 온통 여야 지도자들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

이 나라 대통령은 죽었는가?
이렇게 엄연히 살아 있는데 그 어느 누구도 대통령에 대하여 관심이 없구나!

나는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인가?
그렇지 않다.
나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 한 번도 호랑이처럼 군림한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적어도 지금 나에게는 적당한 표현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머리털 깎인 삼손 신세?
아니 그것도 아니다.
나는 내 스스로 나의 비밀을 적에게 틀어 놓은 적이 없다.
사실 틀어 놓을 비밀도 없다. 아니 모두들 나의 비밀을 다 알고 있다.
내 비밀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그 것은 쉴 새 없이 일하는 것.

(.....)

그렇다!
적은 어쩌면 나로 하여금 쉴 사이 없이 일하도록 하여 정작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 하였는지 모른다.

아, 왜 내가 이것을 여태 깨닫지 못하였을까?
그렇구나,

적은 교묘하게 나의 비밀을 이용한 것이다. 일을 하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니라 일을 너무 많이 하도록 내버려 두어서 결정적인 일에 몰두하지 못하게 하려 했던 것이다.
경제 살리기에 온통 매달려 거기에 모든 것을 집중하였기에 정작 내가 보아야 할 것을 못 보았다는 생각이 비로소 든다.

정말 그렇다!
천안함 폭침이후로 국정의 우선순위는 바뀌어야 했었다.
오직 국가의 안전이 최우선 정책이 되어야 했었다. 경제 살리기는 어느 정도 희생이 되더라도 말이다.
천안함 폭침의 원인에 대한 조사 발표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긍하지 않고 도리어 거짓되고 허황된 말로 국민들을 오도하고 국론 분열을 주도한 자들을 엄격하게 다스려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정말 그렇게 해야 했었는데.

만약 국론이 통일되었다면 북한은 연평도 포격 같은 도발을 일으킬 엄두도 낼 수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 나에게 가장 큰 회한은 연평도가 포격 받았을 때 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 때 만약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였다면 북한의 김정은 치명타를 맞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권력 계승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런 상태에서 김정일이 죽었다면 북한의 붕괴는 그 때부터 시작되었을 런지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아직 북한의 붕괴에 대한 대비가 부족한 것이다. 국민들 간에 이에 대한 완전한 일치를 보이지 않는 것도 큰 문제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지금 이러한 상황 하에서 이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 후회하고 뒤늦게 깨우친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이 있겠는가?
정말 나는 머리털 깎인 삼손처럼 그런 신세에 처했는지 모른다.

나는 손에 들고 있는 책을 내려놓고 황급히 성경책을 찾아 펼쳤다.
손 때 묻은 성경책을 얼마 뒤지지 않아서 삼손에 관한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소리를 내어 크게 읽기 시작하였다.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 하니라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이르되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넘겨주었다 하고 다 모여 그들의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고
(중략)
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이르되 삼손을 불러다가 우리를 위하여 재주를 부리게 하자하고 옥에서 삼손을 불러내매 삼손이 그들을 위하여 재주를 부리니라. 
(중략)
삼손이 집을 버틴 두 기둥 가운데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사사기 16:22-31)“
 
평소에 잘 알고 있던 내용이었으나 지금 다시 읽어 보니 그 내용이 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삼손은 술과 여자 때문에 실패한 지도자라고만 생각하였는데 사사기의 저자는 삼손에 대하여 나와는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삼손의 소명이 동족(이스라엘 사람)의 적(블레셋 사람)을 물리치는 것이라고 보고 비록 그는 중간에 많은 문제를 일으켰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잘 감당하였다는 사사기 저자의 시각을 행간에서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사사기의 저자는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고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삼손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지 않고 비밀을 누설하지 않았으면 더 훌륭한 지도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과오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여주었던 마지막 자기희생적 투혼은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들 모두의 가슴에 길이 기억될 만한 것이리라.

삼손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중에 내 속에 아주 선명한 생각이 하나 자리 잡히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나의 소명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소명은 이 나라를 적으로부터 지키라는 것, 탈북 동포를 지키라는 것, 억압받고 있는 북한 주민을 해방시키라는 것,  자유 민주 평화로 남북통일을 이루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을 위하여 내가 대통령으로 세움을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 동안 나는 경제를 살리는 것이 나의 소명이고 사명이라는 생각에 대해 추호라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 이 순간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웬 까닭인가?

그러나 그러한 생각도 잠시 이내 원래의 생각이 선명한 생각이 제기한 문제를 일축하기 시작하였다. 이미 임기도 거의 다 지나갔고 나는 내 스스로, 내 입으로 말하기 싫지만 레임 덕에 빠진 대통령인데, 내가 이제 무엇을 한다고 해서 몇 사람이나 나를  따를 것이며, 또 무슨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힘이 과연 나에게 남아있는가?

나는 성경책을 덮었다.
가슴이 오히려 더 무거워졌다.
집무실을 나서니 햇볕이 쏟아진다. 나는 심호흡을 수차례 해 보았다. 그러나 가슴은 여전히 답답하였다. 게양대에 걸린 태극기를 쳐다보기가 송구스러웠다.

나라의 대통령이 이렇게 깊은 무력감에 빠지다니.
북악산의 그 웅장한 모습마저 오늘 따라 힘이 없어 보인다. 인왕산은 취임식을 마치고 청와대에 오는 첫 날에도 그러했지만 오늘도 멀리서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고만 있다.

조선의 왕들은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겠지.
고(故) 박정희  대통령은 집무실에 소총을 거치대에 두고 집무를 하였다던데...

녹지원 넓은 뜰에 인기척이 없는 것 또한 이상한 일이었다.
이제 직원들은 나의 심기가 불편하다고 짐작하고는 얼굴 마주치는 것도 어려워하는 구나!
고민에 찬 대통령의 모습을 직원들에게 보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집무실로 돌아와 의자에 풀석 주저 앉았다.
책상 위에 펼쳐진 성경책이 눈에 들어 왔다.
앞서 읽었던 부분을 다시 한 번 읽기 시작하였다.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갑자기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머리털이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삼손의 비밀은 머리털에 있었다.
그런데 그 머리털이 자라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그의 힘이 회복되기 시작했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

나는 여전히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나에게는 남은 임기 동안 대한민국을 적으로부터 지킬 임무와 책무가 있는 것이다
만약 하늘의 소명이 통일을 이루라는 것이라면 통일을 위하여 이 한 몸 던지리라.
죽기를 각오하면 무슨 일인 듯 못 이루랴, 하물며 그것이 하늘의 뜻이라면
내가 더 이상 무엇을 고민하며 무엇을 걱정하겠는가?

나는 당직 비서를 찾았다.
전화기를 통하여 대답하는 당직비서의 목소리는 긴장되어 있었다.
나는 담담하게 그러나 아주 단호한 목소리로 지시를 하였다.

“국방부장관과 국정원장을 호출하시오, 지금 당장”

당직비서는 나의 지시를 그대로 복창하였다.
학사장교 출신인 그는 여태껏 한 번도 이런 식으로 나의 지시를 복창한 적이 없었다. 그가 나의 비장한 마음을 나의 목소리만으로도 알아 차렸기 때문일까?
내려놓은 수화기를 통하여 당직비서가 외치는 “충성” 이란 구호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내 가슴을 관통하고 북악산을 넘어 북으로, 북으로 날아갔다.

창을 통하여 보이는 벚꽃은 그 사이 절정에 다다른 것 같다.
태극기가 힘차게 펄럭이고 있다.
이제 멀지 않아 우리 태극기는 한반도 전체를 뒤덮을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끝)

* 부산의사문우회 작품집인 <醫窓너머로 XV>에 발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