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해외 의료봉사(2006년 9월) 후기(II): 키르기스스탄 비시켁

다음 날 우리는 먼 길을 떠났다. 여러 가지 여건과 형편상 차편으로 국경을 넘어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시켁을 향하여 가기로 한 것이다. 저녁을 황급히 먹으니 어두움이 완연하였다. 차는 천산북로를 따라 우리를 태우고 달렸다. 밤은 더욱 깊었고 우리는 이내 깊은 잠에 빠졌다.

다음날 우리들은 정말 뜻밖의 장소에서 진료를 하였다. 한국 정부가 그 곳에 세운 직업학교의 교실이 바로 우리들의 진료소가 되었던 것이다. 직업학교는 현지인들에게 우리의 선진 농업 기술을 전수하려고 세워졌던 것이다. 키르기스스탄의 젊은이들이 이 학교를 통하여 직업교육을 받고 사회에 나가 키르기스스탄의 농업을 일으키게 될 것 이었다. 그 들이 자신의 조국을 섬길 수 있도록 우리나라가 돕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국력의 신장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아 대한민국이여 너는 얼마나 자랑스러운 나의 조국인가! 연신 휘파람을 불고 나는 교정을 돌아다녔다.
오전에 진료 준비를 마치고 합숙하는 학생들과 함께 점심을 먹은 다음 오후에 진료를 시작하였다. 환자들은 아름아름 소개되어 왔기에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직업학교 학생들이 통역에 큰 힘이 되었다.
그 곳에서 글쓴이는 전공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아들을 데리고 왔었는데 그 여자의 얼굴 표정은 매우 어두워보였다. 아이는  3-4 살 되어 보였다. 아이는 제1형 당뇨병을 앓고 있었으며 인슐린 주사를 맞고 있었다. 당시 휴대용 혈당 측정기가 지금처럼 보편화되어 있지 않아서 그런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 아이 엄마는 요당을 재고 있었다. 물론 요당 검사를 하지 않는 것 보다는 하는 것이 더 좋지만 요당 검사 결과로 혈당치를 추정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따라서 요당 결과에 따라 인슐린 용량을 증감하다가 보면 혈당의 고저가 심하게 되어 결국 혈당을 잘 조절할 수 없게 된다. 아이 엄마는 아이의 혈당이 기복이 심한 것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아이의 혈당을 측정해 주었고 혈당치 결과에 따라 주사할 인슐린 용량을 조정해 주었다. 진료를 마친 후 아이의 엄마는 그 혈당 측정기를 자신에게 줄 수 있느냐고 조심스럽게 요청하였다. 우리들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다. 또한 남은 혈당측정시험지(strip)을 다 주면서 귀국하여 충분한 양을 부쳐 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집 주소를 가르쳐 달라고 하였다. 아마도 기대 이상의 선물을 받게 된 아이 엄마의 얼굴이 잠시나마 밝아졌다.
지금도 아이 엄마의 그 진지함과 자식을 위한 애정이 생각난다. 그 아이는 지금 잘 자라고 있을까? 그 엄마는 우리의 조그마한 도움을 고맙게 기억하고 있을까? 우리 봉사단이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를 문다.
어쩌면 그 아이와 그 엄마를 위해 나를 이곳에 보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실크로드 천산북로는 오늘 이 일을 위해서 개척되었던가?
키르기스스탄 직업학교 국기 게양대 위에 태극기가 키르기스스탄 국기와 함께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멋지게 휘날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