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해외의료봉사(2011 겨울) 후기(2):인도네시아 먼따와이제도
金德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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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26일(수) 새벽에 비
선실 복도를 비집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자던 사람들이 하나 둘 잠을 깨기 시작하였다. 선실 복도가 어수선해졌다. 세면하러 복도 끝에 있는 화장실로 가는 사람들이 자리위에 웅크리고 자고 있는 사람들 곁을 조심스럽게 지나가 주었지만 그런 상황에서 복도에서 계속 새우잠을 잘 수는 없었다.
일어나 대충 잠자리를 정리하고 선실을 나왔다. 후미 출입구 계단위를 밝히고 있는 전등 불 밑으로 비가 제법 내리고 있었다. 후미 갑판은 텅 비어 있었다. 우두커니 비 내리는 바깥을 쳐다보았다. 새벽은 시간상 분명 바로 지척에 와있었는데 하늘과 바다는 같은 색깔이었다. 아니 세상은 온통 어두움의 색깔뿐이었다. 불을 밝혀 둔 전등만이 빛이 원래 부터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시켜주고 있었다.
그렇게 지루하기만 하던 시간이 고맙게도 흐르더니 저 먼바다가 아주 조금씩 밝아온다. 수평선이 보이기 사작하는 것이다. 그 사이 비도 그치고 저 멀리 육지, 아니 섬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먼따와이 씨까갑섬이 드디어 육안으로 보이는 곳에 우리가 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를 태운 배는 늠름한 모습으로 씨까갑 항구에 도착하였다. 무사 항해를 자랑하는 듯 배는 연신 뱃고동을 울렸다. 하선하는 승객들, 마중 나온 사람들, 짐을 부리는 사람들 모두가 바쁘게 움직였다. 밤새 지친 잠을 잔 것이 틀림없었을 터이지만 하선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력은 보이지 않는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그 모든 피곤함을 다 쫓아내었기 때문에 그러할까?
약품 가방과 쓰나미 난민들에게 나누어 줄 구호품(멸치 말린 것)이 담긴 짐을 모두 찾아 배에서 내렸다. 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선착장으로 이동하였다. 그 곳에는 우리들을 태우고 갈 카누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카누를 타고 다시 달렸다. 호수 같은 새벽 바다가 우리 주위로 산개해 가고 있었다. 그 산개가 더 이상 진행될 수 없는 바다 길 끝에는 맹그로브가 군집을 이루고 있었다. 울창한 고무나무 숲 사이로 교회당이 보였고 종탑위에는 아침 햇살을 받은 십가가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드디어 우리를 태운 카누는 조그마한 집 한채가 서 있는 바닷가에 우리를 풀어놓았다. 당시는 몰랐는데 그 집은 모라의 집이었고 카누가 닿은 곳은 모라 네 개인 선착장(?)이었다. 모라는 30대 초반의 주부로 사랑신학대학교를 졸업한 학생이다. 또래 원주민 졸업생 중에서 총명하고 믿음이 두터울 뿐 아니라 신학교 근처에 살고 있어서 두 분 선교사님의 일들을 잘 도와주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구호품과 약품가방은 그 집에 맡겨 두고 개인 가방만 숙소로 가져가기로 하였다. 짐은 오토바이에 실어 나르도록 하고 우리는 숙소를 향하여 황토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약간 경사가 진 길을 얼마 걷지 않아서 언덕에 사랑신학대학교입구가 나타났다.
사랑신학대학교라고 이름 붙여 있지만 우리나라로 친다면 작은 대학 규모의 학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의 전면에는 작은 운동장이 있었는데 풀들이 상당히 자라서 누군가가 풀을 베어 주어야 할 것 같다. 저 멀리 서 있는 학교 건물들과 교회당은 따가운 햇볕 속에 굳건하게 서있었다.
고개를 넘어 학교로 올라오는 동안 햇살은 따가웠고 우리들은 제법 갈증을 느꼈다.
학교 뒤편 약간 높은 곳에 자리잡은 선교사의 사택은 평화롭고 아늑하게 보였다. 그 뒤편은 바로 밀림으로 이어져 있었다. 만약 이러한 아늑한 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면 우리들의 피곤함은 어쩌면 더 했을는지 모른다.
선풍기를 틀어 실내를 시원하게 할 동안 우리들은 테라스에서 잠시 대기하였다. 앞마당에는 잔디를 심어 잘 가꾸어 놓았고 조그마한 연못도 만들어 놓았다. 빗물을 받아 사용하기 위하여 지붕의 물받이가 홈통을 통하여 우물가에 있는 커다란 물통과 연결되어 있었다. 파놓은 우물가에 물펌프와 함께 물을 퍼 올리는 전기 모터도 보였다.
눈을 들어 보니 앞 숲 아니 밀림 저 건너 바다가 아스라이 보였다.
바다는 마치 호수처럼 잔잔하였고 조그마한 섬들이 배처럼 떠 있다. 하늘에는 뭉게구름들이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하늘 높이 펼쳐 있다. 눈에 보이는 저 곳의 풍광은 비록 걸출한 장관은 아닐지라도 그 무엇보다도 평화롭고, 자유롭고, 안온하였다. 어쩌면 낙원은 저러한 모습이 아닐까?
덥고 땀을 많이 흘린 탓인지 갈증이 났다. 우리들은 사가지고 온 두리안을 쪼개어 나누어 먹었다. 벌써 여러 차례 먹어 보았기에 냄새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얀 육질은 과일이라는 느낌보다는 음식을 먹는다는 느낌을 주었다. 아침을 아직 먹지 않은 우리들은 순식간에 깨끗하게 다 먹었다. 피곤기와 배고픔이 가시는 것 같았다.
우리들은 사랑채로 안내되었다. 손님들을 위한 사랑채는 별관이나 선교사 숙소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 사이에 있는 넓은 마당에 타일을 깔아 여러 용도로 사용하도록 한 것은 정말 좋은 생각이었다.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두 사람이 충분히 잘 수 있는 공간이었으며 필요한 것들은 다 있었다. 정말 우리들은 많이 훈련되어 있었다. 14시간의 긴 항해와 열악한 선실환경은 우리 모두를 강인하게 만들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 몸을 새우처럼 웅크리더라도 잘 수 만 있는 공간만 있어도 행복하다는 생각을 다들 가지고 있었는데 이렇게 크고 아늑한 방이라니…….
점심을 먹고 잠시 쉰 다음 봉사 단원들 각자가 나누어 가져온 약품을 취합하여 약들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내일 있을 진료봉사를 위하여 가져 온 약품과 기구들을 점검하였다.
하루 종일 배에 시달릴 것을 예상하고 첫날에는 진료 계획을 잡지 않았다. 오후는 휴식 시간인 셈이다. 봉사단원들은 새롭게 겪어 보는 주위 환경에 많은 들떠있었다.
이 곳 사랑신학대학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언덕 밑에 있는 중고등학교 까지는 전기가 들어와 있는데 이 곳 까지 전선을 연결해 주지 않고 있다. 아무튼 해가 지고 어두움이 찾아오면 발전기를 돌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발전기도 밤 9시가 되면 가동을 중단한다. 장시간 사용하면 발전기 모터가 빨리 손상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밤 9시는 그 이후에 모든 활동이 자동적으로 중단되기에 취침시간이 된다. 전기 공급이 중단되자 이내 온 세상이 캄캄해 졌다.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뒤 숲 밀림에서는 짐승들이 울어대기 시작하였다. 어떤 울음은 짐승의 울음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괴기한 소리에 가까웠다. 도대체 저 괴음을 만들어 내는 생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저렇게 많은 종류의 울음소리를 만들어 내는 밀림이 갑자기 무서웠다. 나는 정말 처음으로 밀림이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선실 복도를 비집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자던 사람들이 하나 둘 잠을 깨기 시작하였다. 선실 복도가 어수선해졌다. 세면하러 복도 끝에 있는 화장실로 가는 사람들이 자리위에 웅크리고 자고 있는 사람들 곁을 조심스럽게 지나가 주었지만 그런 상황에서 복도에서 계속 새우잠을 잘 수는 없었다.
일어나 대충 잠자리를 정리하고 선실을 나왔다. 후미 출입구 계단위를 밝히고 있는 전등 불 밑으로 비가 제법 내리고 있었다. 후미 갑판은 텅 비어 있었다. 우두커니 비 내리는 바깥을 쳐다보았다. 새벽은 시간상 분명 바로 지척에 와있었는데 하늘과 바다는 같은 색깔이었다. 아니 세상은 온통 어두움의 색깔뿐이었다. 불을 밝혀 둔 전등만이 빛이 원래 부터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시켜주고 있었다.
그렇게 지루하기만 하던 시간이 고맙게도 흐르더니 저 먼바다가 아주 조금씩 밝아온다. 수평선이 보이기 사작하는 것이다. 그 사이 비도 그치고 저 멀리 육지, 아니 섬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먼따와이 씨까갑섬이 드디어 육안으로 보이는 곳에 우리가 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를 태운 배는 늠름한 모습으로 씨까갑 항구에 도착하였다. 무사 항해를 자랑하는 듯 배는 연신 뱃고동을 울렸다. 하선하는 승객들, 마중 나온 사람들, 짐을 부리는 사람들 모두가 바쁘게 움직였다. 밤새 지친 잠을 잔 것이 틀림없었을 터이지만 하선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력은 보이지 않는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그 모든 피곤함을 다 쫓아내었기 때문에 그러할까?
약품 가방과 쓰나미 난민들에게 나누어 줄 구호품(멸치 말린 것)이 담긴 짐을 모두 찾아 배에서 내렸다. 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선착장으로 이동하였다. 그 곳에는 우리들을 태우고 갈 카누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카누를 타고 다시 달렸다. 호수 같은 새벽 바다가 우리 주위로 산개해 가고 있었다. 그 산개가 더 이상 진행될 수 없는 바다 길 끝에는 맹그로브가 군집을 이루고 있었다. 울창한 고무나무 숲 사이로 교회당이 보였고 종탑위에는 아침 햇살을 받은 십가가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드디어 우리를 태운 카누는 조그마한 집 한채가 서 있는 바닷가에 우리를 풀어놓았다. 당시는 몰랐는데 그 집은 모라의 집이었고 카누가 닿은 곳은 모라 네 개인 선착장(?)이었다. 모라는 30대 초반의 주부로 사랑신학대학교를 졸업한 학생이다. 또래 원주민 졸업생 중에서 총명하고 믿음이 두터울 뿐 아니라 신학교 근처에 살고 있어서 두 분 선교사님의 일들을 잘 도와주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구호품과 약품가방은 그 집에 맡겨 두고 개인 가방만 숙소로 가져가기로 하였다. 짐은 오토바이에 실어 나르도록 하고 우리는 숙소를 향하여 황토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약간 경사가 진 길을 얼마 걷지 않아서 언덕에 사랑신학대학교입구가 나타났다.
사랑신학대학교라고 이름 붙여 있지만 우리나라로 친다면 작은 대학 규모의 학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의 전면에는 작은 운동장이 있었는데 풀들이 상당히 자라서 누군가가 풀을 베어 주어야 할 것 같다. 저 멀리 서 있는 학교 건물들과 교회당은 따가운 햇볕 속에 굳건하게 서있었다.
고개를 넘어 학교로 올라오는 동안 햇살은 따가웠고 우리들은 제법 갈증을 느꼈다.
학교 뒤편 약간 높은 곳에 자리잡은 선교사의 사택은 평화롭고 아늑하게 보였다. 그 뒤편은 바로 밀림으로 이어져 있었다. 만약 이러한 아늑한 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면 우리들의 피곤함은 어쩌면 더 했을는지 모른다.
선풍기를 틀어 실내를 시원하게 할 동안 우리들은 테라스에서 잠시 대기하였다. 앞마당에는 잔디를 심어 잘 가꾸어 놓았고 조그마한 연못도 만들어 놓았다. 빗물을 받아 사용하기 위하여 지붕의 물받이가 홈통을 통하여 우물가에 있는 커다란 물통과 연결되어 있었다. 파놓은 우물가에 물펌프와 함께 물을 퍼 올리는 전기 모터도 보였다.
눈을 들어 보니 앞 숲 아니 밀림 저 건너 바다가 아스라이 보였다.
바다는 마치 호수처럼 잔잔하였고 조그마한 섬들이 배처럼 떠 있다. 하늘에는 뭉게구름들이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하늘 높이 펼쳐 있다. 눈에 보이는 저 곳의 풍광은 비록 걸출한 장관은 아닐지라도 그 무엇보다도 평화롭고, 자유롭고, 안온하였다. 어쩌면 낙원은 저러한 모습이 아닐까?
덥고 땀을 많이 흘린 탓인지 갈증이 났다. 우리들은 사가지고 온 두리안을 쪼개어 나누어 먹었다. 벌써 여러 차례 먹어 보았기에 냄새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얀 육질은 과일이라는 느낌보다는 음식을 먹는다는 느낌을 주었다. 아침을 아직 먹지 않은 우리들은 순식간에 깨끗하게 다 먹었다. 피곤기와 배고픔이 가시는 것 같았다.
우리들은 사랑채로 안내되었다. 손님들을 위한 사랑채는 별관이나 선교사 숙소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 사이에 있는 넓은 마당에 타일을 깔아 여러 용도로 사용하도록 한 것은 정말 좋은 생각이었다.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두 사람이 충분히 잘 수 있는 공간이었으며 필요한 것들은 다 있었다. 정말 우리들은 많이 훈련되어 있었다. 14시간의 긴 항해와 열악한 선실환경은 우리 모두를 강인하게 만들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 몸을 새우처럼 웅크리더라도 잘 수 만 있는 공간만 있어도 행복하다는 생각을 다들 가지고 있었는데 이렇게 크고 아늑한 방이라니…….
점심을 먹고 잠시 쉰 다음 봉사 단원들 각자가 나누어 가져온 약품을 취합하여 약들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내일 있을 진료봉사를 위하여 가져 온 약품과 기구들을 점검하였다.
하루 종일 배에 시달릴 것을 예상하고 첫날에는 진료 계획을 잡지 않았다. 오후는 휴식 시간인 셈이다. 봉사단원들은 새롭게 겪어 보는 주위 환경에 많은 들떠있었다.
이 곳 사랑신학대학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언덕 밑에 있는 중고등학교 까지는 전기가 들어와 있는데 이 곳 까지 전선을 연결해 주지 않고 있다. 아무튼 해가 지고 어두움이 찾아오면 발전기를 돌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발전기도 밤 9시가 되면 가동을 중단한다. 장시간 사용하면 발전기 모터가 빨리 손상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밤 9시는 그 이후에 모든 활동이 자동적으로 중단되기에 취침시간이 된다. 전기 공급이 중단되자 이내 온 세상이 캄캄해 졌다.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뒤 숲 밀림에서는 짐승들이 울어대기 시작하였다. 어떤 울음은 짐승의 울음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괴기한 소리에 가까웠다. 도대체 저 괴음을 만들어 내는 생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저렇게 많은 종류의 울음소리를 만들어 내는 밀림이 갑자기 무서웠다. 나는 정말 처음으로 밀림이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