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해외의료봉사(2011년 겨울) 후기(5): 인도네시아 먼따와이제도
金德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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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29일(토) 아침, 맑다
적도(赤道) 위에 머물러 있던 회색 구름이 사라지자 섬 전체가 밝게 빛나기 시작하였다. 이곳에 도착 한 날부터 계속 흐리기만 했던 날씨가 오늘은 정말 화창하게 개었던 것이다. 사납기로 이름이 난 그 바다를 잔잔한 호수처럼 건넜던 우리 의료봉사단원들은 또 하나의 복(福)을 받았다. 진료 봉사를 할 때는 구름이 잔뜩 낀 날씨 탓에 너무 덥지 않아서 좋았고 봉사가 쉬는 오늘은 잘 휴식할 수 있도록 날이 눈부시도록 맑아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것이다.
햇빛 차단제를 빠짐없이 듬뿍 바르고 모자를 쓴 다음 일행과 함께 숙소를 나섰다. 숙소에 바로 인접해 있는 사랑신학대학 교정은 하늘에서 쏟아 내리고 있는 햇살을 축복처럼 받고 있었다.
대학이 위치한 언덕을 걸어 내려와 모라네 집에 도착하였다. 모라의 집 앞에는 마을과 연결되는 도로가 나있고 그리 크지 않은 뒤 마당은 바로 바다로 연결되어 있었다. 여기서 마을로 가려면 차로 가든지 배로 가든지 모라의 집을 거쳐야 되었다.
모라는 이 곳 원주민들이 다 그러하듯이 짙은 구리 빛 피부와 시원하게 큰 눈을 가진 20대 후반의 여성이다. 사랑신학대학을 졸업하였고 결혼 후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신학대학을 운영하는 선교사님들을 잘 섬겨오고 있어서 선교사님들에게 적지 않은 힘이 되어 주고 있다고 한다.
모라네 바닷가에서 카누를 타고 숙소에서 보면 꿈처럼 떠 있는 바로 그 섬들 중의 하나로 간다는 것이다. 아, 그 설렘이란!
우리가 갈 목적지는 시루소, 그 이름조차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우리 일행을 태운 두 대의 카누는 앞으로 달렸다. 카누의 양 옆에는 카누 길이와 거의 비슷한 길이의 대나무가 평행으로 연결되어 있다. 아마도 배가 균형을 잘 잡을 수 있도록 설치해 놓은 것 같았다. 쓰나미를 경험한 이후 어부들은 먼 바다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우리들의 배는 이러한 말에 개의치 않는 듯 파도가 거의 일지 않는 바다위로 나아갔다.
머리 바로 위에서 거침없이 쏟아지는 햇살을 피하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누군가가 양산을 꺼내 썼다. 햇빛 차단제를 발랐음에도 불구하고 태양에 노출된 피부는 이내 벌겋게 익기 시작하였다.
반시간 남짓 달렸을까, 우리들을 태운 카누는 드디어 시루소에 닿았다. 바닷물은 비취색을 품었고 하얀 모래밭은 길게 늘어서서 아스라한 작은 해안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 넓지 않은 모래톱에 연하여 밀림이 시작되었고 미쳐 숲으로 가지 못한 몇 그루의 열대 야생나무들이 해안가에 늘어서서 적도 햇살을 피할 수 있는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필리핀의 세부에서 본 모래 해안도 참으로 멋지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곳은 그 곳 보다 몇 배로 아름다웠다. 무엇보다도 사람의 손길이 한 번도 미치지 않은 듯,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지금 이 모습이 갓 창조되었을 때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정도였다. 이런 곳을 낙원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모두들 준비해간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바다로 뛰어 들었다. 불과 몇 미터를 못가서 비취색 물빛이 짙은 푸른빛으로 바뀌었다. 갑자기 심장이 쿵쾅 쿵쾅 뛰기 시작한다. 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빠져 나오지 못할 것 같은 저 심연(深淵)이 주는 깊은 두려움 때문이리라.
준비해온 낚시에 미끼를 끼고 낚시 줄을 드리웠다. 우리가 한 마리도 못 잡는 동안 모라는 벌써 대여섯 마리의 고기를 잡았다. 고기는 대부분 작았으나 색깔만은 열대어답게 가지각색으로 현란하였다. 모라는 익숙한 솜씨로 고기를 손질한 다음 불에 굽기 시작하였다.
수백 년도 더 된 것처럼 보이는 열대 나무아래 자리를 펴고 끓인 라면에 밥을 말아 먹었다.라면이 이렇게 맛있을 수도 있구나! 모라는 잘 구워진 생선을 우리들에게 한 번 먹어보라고 권하였지만 선뜻 먹고 싶지가 않았다. 현지 적응을 잘하려면 받아 먹었어야했지만 나는 다음에 먹겠다고 정중하게 사양하고 말았다.
오후 내내 휴식한 우리들은 시루소를 떠나 귀가 길에 올랐다. 봉사하러 와서 이렇게 멋진 휴가를 보너스를 받게 된 것을 감사하면서도 이처럼 매혹적인 시루소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많은 아쉬움을 안겨 주었다. 다음에 이곳에 다시 올 기회가 또 있을까? 그렇다! 아쉬움이란 다음이라는 기회가 없을 것 같기에 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안타까움인 것을.
모라네 집에 도착하니 한 낯선 사람이 우리 봉사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람은 시까갑 지역에 산재한 쓰나미 이재민 수용소에 식수(食水)를 공급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들이 어제 진료했던 32Km CAMP에서 수 십 명의 어린이들이 고열과 발진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면서 현재 이 섬에서 의사로서는 우리밖에 없으니 어서 가서 치료해 달라고 부탁하려고 왔다는 것이다.
그는 먼저 보건소에 알렸지만 보건소 의사가 수마트라 섬으로 출타중이어서 빨라도 내일이 되어야 돌아 올 수 있다는 것과 현재로서는 즉각적인 조치를 취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혼자 안타까워하던 차에 우리 봉사단이 그 곳에서 진료를 하고 갔다는 소식을 듣고 수소문하여 여기 까지 찾아왔던 것이었다.
그 사람이 우리를 찾아 온 것은 참으로 귀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의 말만 듣고 섣불리 진료에 나설 수는 없었다. 이재민 수용소에서 열병이 집단적으로 발병한 것으로 보아 이 지역에서 유행하는 전염병 같은데 이런 경우에 현지 보건소 의사의 허락 없이 진료를 했다가 혹 잘못되는 경우에는 책임 소재 등 매우 복잡한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에게 설명하였다. 우리는 언제든지 가서 도와 줄 수 있지만 보건소 의사의 허락 없이는 그렇게 할 수 없으니 보건소에 있는 간호사한테 이러한 우리의 뜻을 전해 주고 그 쪽에서 정식으로 요청을 하면 바로 가서 진료를 하겠다고 하였다.
그 사람은 우리가 도움을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지 보건소의 허락을 받아야 된다는 우리들의 입장을 이해한 것 같았다. 우리는 그에게 연락처로 현지 선교사의 휴대폰 번호를 알려 주었고 그의 명함도 받아 놓았다. 그는 보건소의 허락을 얻게 되면 즉시 전화로 우리들에게 알려 주겠다고 말한 다음 오토바이를 타고 떠났다.
우리들은 체온계, 체중계, 수액, 항생제, 해열제 등을 따로 꾸렸다. 응급진료를 준비하는 단원들의 얼굴에서 밤을 샐 결연한 각오를 읽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밤이 늦도록 그 사람으로부터 전화연락이 없었다. 우리들은 일단 잠을 자두기로 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 날 밤 큰일이 났다. 단원 중 한사람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큰일이 났다고 하면서 밖으로 나가 보라는 것이다. 나는 마치 용수철이 튀어나듯이 벌떡 일어났다. 큰일이라면 이재민 수용소에서 집단적으로 발병한 열병으로 인하여 아이들 중에 누군가가 어떻게 되었단 말인가? 혹은 지난 이틀 동안 우리들이 진료한 환자들 중에서 약물 부작용 등으로 증세가 위중한 환자가 생겼단 말인가? 그 짧은 순간 내 머리 속에는 진료로 인하여 생길 수 있는 최악의 상황들이 순식간에 떠올랐다.
방에서 황급하게 밖으로 나와 마당에 나서니 정말 큰일이 벌어져 있었다.
엄청나게 많은 별들이 밤하늘에서, 아니 바로 내 머리 위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그것도 끊임없이.
단원 중 한 사람이 밤중에 잠이 깨어 일어나 하늘을 쳐다 본 것이 발단이 되었던 것이다. 그 는 자신이 본 이 놀라운 경이로움을 혼자만 볼 수 없었기에, 아니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자고 있는 나를 깨웠던 것이다. 그로 인하여 곤하게 잠자고 있던 모든 단원들이 마당으로 나왔다.
우리들은 이내 시인(詩人)들이 되었다. 저마다 자신이 마음속에 떠 오른 그 모든 찬탄들을 밤하늘을 향하여 고백하였다. 태초로부터 지금까지 광대한 밤하늘에 흐르고 있는 은하수(銀河水)를 보고 찬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어느새 모두가 이 경이로운 우주를 손수 만드신 창조주의 그 위대함을 찬양하는데 한마음이 되었다.
아래의 글 <큰일이 났다>는 의료봉사를 다 마치고 귀국한 후 봉사일정을 회고하는 가운데 써 졌다. 이 글이 탄생한 것은 전적으로 그 봉사단원의 공로이었다. 그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큰일이 났다>
누군가가 황급히 큰일 났다며 깨운 탓에
잠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갔더니
아 정말,
큰일이 나 있다
가없는 밤하늘을 가득채운 별들이
자신이 보듬은 별빛들을 쉴 새 없이 지상으로 쏟아 내리고 있다
창조주(創造主)가 매일 밤마다 보여주는 저 장엄한 광경을
지난 십 수 년 동안
한 번도 겸허하게 보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도
큰 일,
밤하늘의 장관(壯觀) 보다도
도시 야간 문화에 마음이 송두리째 빼앗겼던 것도
큰 일,
못 볼 것을 너무나 많이 보아 온 내 눈이
천상(天上)의 별들을 명확하게 분별할 수 없을 정도로
약시(弱視)가 된 것이
더 큰일이다
눈을 뗄 수 없는 적도(赤道)의 밤하늘에는
창조된 세계가 선사받은 신성(神聖)함을
자랑스럽게 빛내고 있다
이제 정말로 큰일은
저 광대한 우주가 내 작은 가슴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 2013-2-11 글 고침.
적도(赤道) 위에 머물러 있던 회색 구름이 사라지자 섬 전체가 밝게 빛나기 시작하였다. 이곳에 도착 한 날부터 계속 흐리기만 했던 날씨가 오늘은 정말 화창하게 개었던 것이다. 사납기로 이름이 난 그 바다를 잔잔한 호수처럼 건넜던 우리 의료봉사단원들은 또 하나의 복(福)을 받았다. 진료 봉사를 할 때는 구름이 잔뜩 낀 날씨 탓에 너무 덥지 않아서 좋았고 봉사가 쉬는 오늘은 잘 휴식할 수 있도록 날이 눈부시도록 맑아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것이다.
햇빛 차단제를 빠짐없이 듬뿍 바르고 모자를 쓴 다음 일행과 함께 숙소를 나섰다. 숙소에 바로 인접해 있는 사랑신학대학 교정은 하늘에서 쏟아 내리고 있는 햇살을 축복처럼 받고 있었다.
대학이 위치한 언덕을 걸어 내려와 모라네 집에 도착하였다. 모라의 집 앞에는 마을과 연결되는 도로가 나있고 그리 크지 않은 뒤 마당은 바로 바다로 연결되어 있었다. 여기서 마을로 가려면 차로 가든지 배로 가든지 모라의 집을 거쳐야 되었다.
모라는 이 곳 원주민들이 다 그러하듯이 짙은 구리 빛 피부와 시원하게 큰 눈을 가진 20대 후반의 여성이다. 사랑신학대학을 졸업하였고 결혼 후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신학대학을 운영하는 선교사님들을 잘 섬겨오고 있어서 선교사님들에게 적지 않은 힘이 되어 주고 있다고 한다.
모라네 바닷가에서 카누를 타고 숙소에서 보면 꿈처럼 떠 있는 바로 그 섬들 중의 하나로 간다는 것이다. 아, 그 설렘이란!
우리가 갈 목적지는 시루소, 그 이름조차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우리 일행을 태운 두 대의 카누는 앞으로 달렸다. 카누의 양 옆에는 카누 길이와 거의 비슷한 길이의 대나무가 평행으로 연결되어 있다. 아마도 배가 균형을 잘 잡을 수 있도록 설치해 놓은 것 같았다. 쓰나미를 경험한 이후 어부들은 먼 바다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우리들의 배는 이러한 말에 개의치 않는 듯 파도가 거의 일지 않는 바다위로 나아갔다.
머리 바로 위에서 거침없이 쏟아지는 햇살을 피하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누군가가 양산을 꺼내 썼다. 햇빛 차단제를 발랐음에도 불구하고 태양에 노출된 피부는 이내 벌겋게 익기 시작하였다.
반시간 남짓 달렸을까, 우리들을 태운 카누는 드디어 시루소에 닿았다. 바닷물은 비취색을 품었고 하얀 모래밭은 길게 늘어서서 아스라한 작은 해안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 넓지 않은 모래톱에 연하여 밀림이 시작되었고 미쳐 숲으로 가지 못한 몇 그루의 열대 야생나무들이 해안가에 늘어서서 적도 햇살을 피할 수 있는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필리핀의 세부에서 본 모래 해안도 참으로 멋지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곳은 그 곳 보다 몇 배로 아름다웠다. 무엇보다도 사람의 손길이 한 번도 미치지 않은 듯,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지금 이 모습이 갓 창조되었을 때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정도였다. 이런 곳을 낙원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모두들 준비해간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바다로 뛰어 들었다. 불과 몇 미터를 못가서 비취색 물빛이 짙은 푸른빛으로 바뀌었다. 갑자기 심장이 쿵쾅 쿵쾅 뛰기 시작한다. 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빠져 나오지 못할 것 같은 저 심연(深淵)이 주는 깊은 두려움 때문이리라.
준비해온 낚시에 미끼를 끼고 낚시 줄을 드리웠다. 우리가 한 마리도 못 잡는 동안 모라는 벌써 대여섯 마리의 고기를 잡았다. 고기는 대부분 작았으나 색깔만은 열대어답게 가지각색으로 현란하였다. 모라는 익숙한 솜씨로 고기를 손질한 다음 불에 굽기 시작하였다.
수백 년도 더 된 것처럼 보이는 열대 나무아래 자리를 펴고 끓인 라면에 밥을 말아 먹었다.라면이 이렇게 맛있을 수도 있구나! 모라는 잘 구워진 생선을 우리들에게 한 번 먹어보라고 권하였지만 선뜻 먹고 싶지가 않았다. 현지 적응을 잘하려면 받아 먹었어야했지만 나는 다음에 먹겠다고 정중하게 사양하고 말았다.
오후 내내 휴식한 우리들은 시루소를 떠나 귀가 길에 올랐다. 봉사하러 와서 이렇게 멋진 휴가를 보너스를 받게 된 것을 감사하면서도 이처럼 매혹적인 시루소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많은 아쉬움을 안겨 주었다. 다음에 이곳에 다시 올 기회가 또 있을까? 그렇다! 아쉬움이란 다음이라는 기회가 없을 것 같기에 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안타까움인 것을.
모라네 집에 도착하니 한 낯선 사람이 우리 봉사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람은 시까갑 지역에 산재한 쓰나미 이재민 수용소에 식수(食水)를 공급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들이 어제 진료했던 32Km CAMP에서 수 십 명의 어린이들이 고열과 발진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면서 현재 이 섬에서 의사로서는 우리밖에 없으니 어서 가서 치료해 달라고 부탁하려고 왔다는 것이다.
그는 먼저 보건소에 알렸지만 보건소 의사가 수마트라 섬으로 출타중이어서 빨라도 내일이 되어야 돌아 올 수 있다는 것과 현재로서는 즉각적인 조치를 취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혼자 안타까워하던 차에 우리 봉사단이 그 곳에서 진료를 하고 갔다는 소식을 듣고 수소문하여 여기 까지 찾아왔던 것이었다.
그 사람이 우리를 찾아 온 것은 참으로 귀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의 말만 듣고 섣불리 진료에 나설 수는 없었다. 이재민 수용소에서 열병이 집단적으로 발병한 것으로 보아 이 지역에서 유행하는 전염병 같은데 이런 경우에 현지 보건소 의사의 허락 없이 진료를 했다가 혹 잘못되는 경우에는 책임 소재 등 매우 복잡한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에게 설명하였다. 우리는 언제든지 가서 도와 줄 수 있지만 보건소 의사의 허락 없이는 그렇게 할 수 없으니 보건소에 있는 간호사한테 이러한 우리의 뜻을 전해 주고 그 쪽에서 정식으로 요청을 하면 바로 가서 진료를 하겠다고 하였다.
그 사람은 우리가 도움을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지 보건소의 허락을 받아야 된다는 우리들의 입장을 이해한 것 같았다. 우리는 그에게 연락처로 현지 선교사의 휴대폰 번호를 알려 주었고 그의 명함도 받아 놓았다. 그는 보건소의 허락을 얻게 되면 즉시 전화로 우리들에게 알려 주겠다고 말한 다음 오토바이를 타고 떠났다.
우리들은 체온계, 체중계, 수액, 항생제, 해열제 등을 따로 꾸렸다. 응급진료를 준비하는 단원들의 얼굴에서 밤을 샐 결연한 각오를 읽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밤이 늦도록 그 사람으로부터 전화연락이 없었다. 우리들은 일단 잠을 자두기로 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 날 밤 큰일이 났다. 단원 중 한사람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큰일이 났다고 하면서 밖으로 나가 보라는 것이다. 나는 마치 용수철이 튀어나듯이 벌떡 일어났다. 큰일이라면 이재민 수용소에서 집단적으로 발병한 열병으로 인하여 아이들 중에 누군가가 어떻게 되었단 말인가? 혹은 지난 이틀 동안 우리들이 진료한 환자들 중에서 약물 부작용 등으로 증세가 위중한 환자가 생겼단 말인가? 그 짧은 순간 내 머리 속에는 진료로 인하여 생길 수 있는 최악의 상황들이 순식간에 떠올랐다.
방에서 황급하게 밖으로 나와 마당에 나서니 정말 큰일이 벌어져 있었다.
엄청나게 많은 별들이 밤하늘에서, 아니 바로 내 머리 위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그것도 끊임없이.
단원 중 한 사람이 밤중에 잠이 깨어 일어나 하늘을 쳐다 본 것이 발단이 되었던 것이다. 그 는 자신이 본 이 놀라운 경이로움을 혼자만 볼 수 없었기에, 아니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자고 있는 나를 깨웠던 것이다. 그로 인하여 곤하게 잠자고 있던 모든 단원들이 마당으로 나왔다.
우리들은 이내 시인(詩人)들이 되었다. 저마다 자신이 마음속에 떠 오른 그 모든 찬탄들을 밤하늘을 향하여 고백하였다. 태초로부터 지금까지 광대한 밤하늘에 흐르고 있는 은하수(銀河水)를 보고 찬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어느새 모두가 이 경이로운 우주를 손수 만드신 창조주의 그 위대함을 찬양하는데 한마음이 되었다.
아래의 글 <큰일이 났다>는 의료봉사를 다 마치고 귀국한 후 봉사일정을 회고하는 가운데 써 졌다. 이 글이 탄생한 것은 전적으로 그 봉사단원의 공로이었다. 그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큰일이 났다>
누군가가 황급히 큰일 났다며 깨운 탓에
잠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갔더니
아 정말,
큰일이 나 있다
가없는 밤하늘을 가득채운 별들이
자신이 보듬은 별빛들을 쉴 새 없이 지상으로 쏟아 내리고 있다
창조주(創造主)가 매일 밤마다 보여주는 저 장엄한 광경을
지난 십 수 년 동안
한 번도 겸허하게 보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도
큰 일,
밤하늘의 장관(壯觀) 보다도
도시 야간 문화에 마음이 송두리째 빼앗겼던 것도
큰 일,
못 볼 것을 너무나 많이 보아 온 내 눈이
천상(天上)의 별들을 명확하게 분별할 수 없을 정도로
약시(弱視)가 된 것이
더 큰일이다
눈을 뗄 수 없는 적도(赤道)의 밤하늘에는
창조된 세계가 선사받은 신성(神聖)함을
자랑스럽게 빛내고 있다
이제 정말로 큰일은
저 광대한 우주가 내 작은 가슴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 2013-2-11 글 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