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해외의료봉사(2011년 겨울) 후기(6): 인도네시아 먼따와이제도
金德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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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30일(일) 아침 흐린 후 맑다.
일요일 오전 넴넴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오후에 신학교에서 학생들과 학교 직원을 위한 진료하였다.
시까갑 에서 목회를 하는 목사님의 아들인데 정신이 이상하다고 한다. 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는 진찰 상 특이소견이 없어 보였다. 혹시나 해서 이경으로 귀를 들여다보았더니 이물질로 양측 외이도가 거의 다 막혀 있었다.
교실은 어두워서 이물질을 빼내기가 쉽지 않았다. 바깥이 실내보다 밝았기 때문에 우리들은 실외에서 이물질을 제거해 주기로 하였다.
이번에 가져간 이물질 제거용 forcep이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여태까지는 가지고 가지 않았는데 혹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구입하였는데 이것이 이렇게 쓰일 줄이야. 이 물질은 외이도에 고착된 것이 오래 된 탓인지 꿈적도 하지 않았다. 이과용 항생제를 외이도에 넣어 30분 정도 눕혀 놓은 후 다시 제거를 시도하였다. 작은 곤충의 몸체로 보이는 이물질들이 분해되어 나왔다.
아이는 꽉 막힌 귀가 뚫린 탓인지 이내 밝은 표정을 보였다. 그 동안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그러한 것을 정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아이는 전에 보다 소리가 훨씬 잘 들린다고 하였다. 아이의 부모들은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아마 이러한 느낌 때문에 우리는 봉사를 계속하는가 보다.
2011년 1월 31일(월) 아침 맑음
어제 주일 예배를 드렸던 넴넴교회 예배당에서 하루 종일 진료를 하였다. 이 마을에 사는 아이들과 아낙네들은 거의 다 다녀간 것 같았다.
진료 중에 갑자기 비가 들여 닥쳤다. 창문을 닫는 소동을 벌였으나 한 시간이 채 가지 않아서 햇빛이 다시 쏟아져 들어왔다. 열대성 스콜을 실감하였다.
점심을 먹고 나니 그 동안 쌓였던 피로가 순식간에 달려든다. 눈가풀이 무거워서 교회당 긴 의자에 좀 눕고 싶지만 모기가 달려들어서 그렇게도 할 수 없다.
더위 탓에 두 시간도 집중할 수 없다.
교회 벽에 붙은 선풍기 덕에 더위는 어느 정도 견딜 수가 있었다.
2011년 2월 1일(화) 아침 흐림.
오늘은 이 번 의료 봉사의 마지막 날이다.
벨레락속지방에서 진료하기로 선교사님이 미리 약속을 해 놓았다.
우리 봉사단 일행은 3/4톤 트럭을 타고 갔다. 트럭 뒤 칸 양쪽에는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긴 의자가 장착되어 있었으나 나무의자 사이에 못이 완전히 처리되지 않아서 조심하지 않으면 못에 찔릴 수 있었다.
덮개천막(호로)이 트럭에 씌어 놓았는데 착탈식은 아니고 고정되어 있었다. 측면에 비닐 창을 만들어 비가 올 때는 내리도록 되어 있었다.
출발할 때는 흐리더니 한참 달리고 나니 비가 오기 시작한다. 비가 내리는 밀림 속으로 난 길을 봉사를 위해 약품과 구호품을 실고 가는 멋진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으나 현실 속의 우리는 정말 죽을 것 같은 상황에 봉착하였다. 비가 오고 저기압 상태여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차에서 품어내는 배기가스가 그대로 차 뒤 칸 안으로 다시 들어오는 것이다. 배기가스는 어느 특정된 곳에서 들어오는 것 같지 않았다. 거의 모든 방향에서 틈이 있는 곳이라면 그 틈으로 다 들어오는 것 같았다.
손수건을 코로 막았으나 소용없었다. 마침 가방 안에 들어 있는 수술용 마스크를 찾아 썼으나 무용지물…….
몸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도 상황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환기를 위해 급히 비닐 창을 조금 열었더니 비만 세차게 들어 올 뿐 아니라 기대하던 신선한 공기 대신에 배기가스가 더 들어왔다.
우리들은 지속적으로 배기가스가 섞인 혼탁한 공기를 들이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런 상황이 거의 두 시간 이상 지속되었던 것이다. 아,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만약 차 뒤편마저 닫혀 있었다면 우리들은 아무 소리도 못하고 질식하였을 것이다.
차의 속도와 바람의 방향에 따라 잠시 배기가스가 섞인 공기를 적게 마시는 경우가 간간이 있었는데 그 때 마다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얼마나 감사하였는지 모른다. 다음에 혹 이곳에 봉사하러 온다면 반드시 방독면을 준비해야 할 것 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들 정말 순교를 각오하고 차에 앉아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생각되는 순간 우리들의 목적지 벨레락속 지역에 도달하였다. 뒤 칸에 탔던 우리 일행은 모두 차에서 뛰어 내려 숨을 연신 들어 마셨다. 아 공기가 이렇게 청량하였던가. 우리는 이제 살았던 것이다!
다행히 비는 그쳤지만 날씨는 여전히 흐렸다.
캠프를 찾아오느라고 오전 한 나절을 길에서 다 보낸 것이었다.
치료를 받으러 온 아이 중 니라라는 이름의 중2학년 학생이 있었다. 쓰나미로 인하여 어머니와 오빠를 잃고 아버지와 둘이서 살고 있다고 한다. 교복을 단정히 입고 있는 모습이 아주 단아하였고 모범적인 학생처럼 보였다. 우리 대원 중 한 사람이 그 아이를 수양딸 삼고 싶어 하였다. 그 아버지도 이를 허락하여 그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학비를 지원해 주기로 약속하였다. 수양아버지는 이 딸아이를 잘 양육하여야 할 텐데 하면서 벌써부터 부성애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의료봉사를 마치고 트럭을 타고 숙소를 향하였다. 비도 그쳤고 날씨가 개여서 그런지 돌아 오는 길에는 트럭의 배기가스는 더 이상 마시지 않아도 되었다. 우리들이 내렸던 곳은 아직도 먼데 이미 밤이 되었다. 전조등 불빛만 앞을 달린다. 차에 탄 우리들은 녹초가 된 탓인지 모두 아무 말이 없었다. 우리 뒤를 향하여 밀려나가는 주위의 밀림처럼.
2011년 2월 2일(수) 아침 맑다.
정들었던 시깝갑의 그 모든 것들과 작별인사를 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우리를 초청한 선교사님들, 우리를 도와 준 모라와, 사랑신학대학 학생들과 말이다.
봉사를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돌아오면 언제나 우리들을 편안하게 맞이해 주었던 그 안온한 선교사의 사랑채.
그 멋진 시루소 바다와 밤하늘의 뭇별, 이 모든 것을 과연 잊을 수 있을까?
맛있었던 두리안과 망고, 그리고 삶은 king crab.
선교사님의 특별한 사랑이 녹녹히 녹아있는 그 만찬은 얼마나 풍성하였던가?
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우리들은 떠나야 했던 것이다.
14시간이나 타고가야하는 뱃길이 두렵지 않느냐고?
천만의 말씀,
뱃길은 우리가 왔을 때처럼 아주 잔잔할 것이라는 믿음이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어떤 어려움도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우리들은 이러한 자신감을 품고 우리를 일주일 전 우리를 태워다 주었던 Ambu-Ambu호에 올라탔다.
어쩌면 이곳에 다시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
Ambu-Ambu호는 뱃고동을 길게 울리고 항구를 떠나기 시작하였다. 우리들은 선교사님과 학생들이 보이지 않을 때 까지 손을 흔들었다.
이러한 감정은 정말 근래에 가져 본 적이 없는 것들이었다.
이 모든 감정들이 어우러져 낙원을 꿈꾸다라는 제목의 글이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獻詩, 낙원을 꿈꾸다>
야자수 너머 저 멀리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
맹그로브(mangrove) 나무숲으로 둘러싸인 섬들이
구름처럼 떠 있다.
저 풍광처럼 아름다운 세상을
나 여기서 이룰 수 있을까?
발목까지 빠져
장화신지 않고는 한 걸음 움직이기 힘든
질펀한 황토 뻘 위에
비 피할 수 있는 공간만 있어도 좋으니
그런 처소를 세울 수나 있을까?
빗물이라도 받아먹어야 살 수 있는
이 원시림 속에서
가냘픈 아녀자의 몸 하나 지탱할 수나 있을까?
조금만 움직여도 한낮 더위가
나를 꼼짝 사로잡아
무기력하게 만드는 이곳에서
주어진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한 걸음 내 딛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
저 밀림 속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른다.
모르는 자에게는 두려움이 있는 법,
해가 지고
그 많던 별들도 구름 속으로 사라지면
주위 온 세상은 암흑천지가 된다.
미지(未知)와 암흑이 주는 두려움을
어제는 용케 이겨냈지만
과연 오늘도 극복해 낼 수 있을까?
저렇게 천진난만한 눈망울을 가진
먼따와이(Mentawai) 원주민들이
속절없이 거짓말 하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물건을 예사로이 훔쳐간다.
나 정말 이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August Lett 선교사가
순교(殉敎)하면서까지
이 땅에서 이루려고 했던 그 일,
나 또한 그 일을 이루어 낼 수 있을까?
어느 새 서쪽 하늘 저녁놀이
바다 위에서 황홀하게 타고 있다.
이 곳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해 왔던
물음을 다시 해 본다.
나, 정말 여기에 그 낙원을 이룰 수 있을까?
* 2011년 2월5일 김덕규 글 쓰다.
* 인도네시아 먼따와이 제도 우따라섬에서 사역하시는
홍수희, 정필녀 선교사님께 헌정함.
일요일 오전 넴넴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오후에 신학교에서 학생들과 학교 직원을 위한 진료하였다.
시까갑 에서 목회를 하는 목사님의 아들인데 정신이 이상하다고 한다. 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는 진찰 상 특이소견이 없어 보였다. 혹시나 해서 이경으로 귀를 들여다보았더니 이물질로 양측 외이도가 거의 다 막혀 있었다.
교실은 어두워서 이물질을 빼내기가 쉽지 않았다. 바깥이 실내보다 밝았기 때문에 우리들은 실외에서 이물질을 제거해 주기로 하였다.
이번에 가져간 이물질 제거용 forcep이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여태까지는 가지고 가지 않았는데 혹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구입하였는데 이것이 이렇게 쓰일 줄이야. 이 물질은 외이도에 고착된 것이 오래 된 탓인지 꿈적도 하지 않았다. 이과용 항생제를 외이도에 넣어 30분 정도 눕혀 놓은 후 다시 제거를 시도하였다. 작은 곤충의 몸체로 보이는 이물질들이 분해되어 나왔다.
아이는 꽉 막힌 귀가 뚫린 탓인지 이내 밝은 표정을 보였다. 그 동안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그러한 것을 정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아이는 전에 보다 소리가 훨씬 잘 들린다고 하였다. 아이의 부모들은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아마 이러한 느낌 때문에 우리는 봉사를 계속하는가 보다.
2011년 1월 31일(월) 아침 맑음
어제 주일 예배를 드렸던 넴넴교회 예배당에서 하루 종일 진료를 하였다. 이 마을에 사는 아이들과 아낙네들은 거의 다 다녀간 것 같았다.
진료 중에 갑자기 비가 들여 닥쳤다. 창문을 닫는 소동을 벌였으나 한 시간이 채 가지 않아서 햇빛이 다시 쏟아져 들어왔다. 열대성 스콜을 실감하였다.
점심을 먹고 나니 그 동안 쌓였던 피로가 순식간에 달려든다. 눈가풀이 무거워서 교회당 긴 의자에 좀 눕고 싶지만 모기가 달려들어서 그렇게도 할 수 없다.
더위 탓에 두 시간도 집중할 수 없다.
교회 벽에 붙은 선풍기 덕에 더위는 어느 정도 견딜 수가 있었다.
2011년 2월 1일(화) 아침 흐림.
오늘은 이 번 의료 봉사의 마지막 날이다.
벨레락속지방에서 진료하기로 선교사님이 미리 약속을 해 놓았다.
우리 봉사단 일행은 3/4톤 트럭을 타고 갔다. 트럭 뒤 칸 양쪽에는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긴 의자가 장착되어 있었으나 나무의자 사이에 못이 완전히 처리되지 않아서 조심하지 않으면 못에 찔릴 수 있었다.
덮개천막(호로)이 트럭에 씌어 놓았는데 착탈식은 아니고 고정되어 있었다. 측면에 비닐 창을 만들어 비가 올 때는 내리도록 되어 있었다.
출발할 때는 흐리더니 한참 달리고 나니 비가 오기 시작한다. 비가 내리는 밀림 속으로 난 길을 봉사를 위해 약품과 구호품을 실고 가는 멋진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으나 현실 속의 우리는 정말 죽을 것 같은 상황에 봉착하였다. 비가 오고 저기압 상태여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차에서 품어내는 배기가스가 그대로 차 뒤 칸 안으로 다시 들어오는 것이다. 배기가스는 어느 특정된 곳에서 들어오는 것 같지 않았다. 거의 모든 방향에서 틈이 있는 곳이라면 그 틈으로 다 들어오는 것 같았다.
손수건을 코로 막았으나 소용없었다. 마침 가방 안에 들어 있는 수술용 마스크를 찾아 썼으나 무용지물…….
몸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도 상황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환기를 위해 급히 비닐 창을 조금 열었더니 비만 세차게 들어 올 뿐 아니라 기대하던 신선한 공기 대신에 배기가스가 더 들어왔다.
우리들은 지속적으로 배기가스가 섞인 혼탁한 공기를 들이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런 상황이 거의 두 시간 이상 지속되었던 것이다. 아,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만약 차 뒤편마저 닫혀 있었다면 우리들은 아무 소리도 못하고 질식하였을 것이다.
차의 속도와 바람의 방향에 따라 잠시 배기가스가 섞인 공기를 적게 마시는 경우가 간간이 있었는데 그 때 마다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얼마나 감사하였는지 모른다. 다음에 혹 이곳에 봉사하러 온다면 반드시 방독면을 준비해야 할 것 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들 정말 순교를 각오하고 차에 앉아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생각되는 순간 우리들의 목적지 벨레락속 지역에 도달하였다. 뒤 칸에 탔던 우리 일행은 모두 차에서 뛰어 내려 숨을 연신 들어 마셨다. 아 공기가 이렇게 청량하였던가. 우리는 이제 살았던 것이다!
다행히 비는 그쳤지만 날씨는 여전히 흐렸다.
캠프를 찾아오느라고 오전 한 나절을 길에서 다 보낸 것이었다.
치료를 받으러 온 아이 중 니라라는 이름의 중2학년 학생이 있었다. 쓰나미로 인하여 어머니와 오빠를 잃고 아버지와 둘이서 살고 있다고 한다. 교복을 단정히 입고 있는 모습이 아주 단아하였고 모범적인 학생처럼 보였다. 우리 대원 중 한 사람이 그 아이를 수양딸 삼고 싶어 하였다. 그 아버지도 이를 허락하여 그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학비를 지원해 주기로 약속하였다. 수양아버지는 이 딸아이를 잘 양육하여야 할 텐데 하면서 벌써부터 부성애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의료봉사를 마치고 트럭을 타고 숙소를 향하였다. 비도 그쳤고 날씨가 개여서 그런지 돌아 오는 길에는 트럭의 배기가스는 더 이상 마시지 않아도 되었다. 우리들이 내렸던 곳은 아직도 먼데 이미 밤이 되었다. 전조등 불빛만 앞을 달린다. 차에 탄 우리들은 녹초가 된 탓인지 모두 아무 말이 없었다. 우리 뒤를 향하여 밀려나가는 주위의 밀림처럼.
2011년 2월 2일(수) 아침 맑다.
정들었던 시깝갑의 그 모든 것들과 작별인사를 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우리를 초청한 선교사님들, 우리를 도와 준 모라와, 사랑신학대학 학생들과 말이다.
봉사를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돌아오면 언제나 우리들을 편안하게 맞이해 주었던 그 안온한 선교사의 사랑채.
그 멋진 시루소 바다와 밤하늘의 뭇별, 이 모든 것을 과연 잊을 수 있을까?
맛있었던 두리안과 망고, 그리고 삶은 king crab.
선교사님의 특별한 사랑이 녹녹히 녹아있는 그 만찬은 얼마나 풍성하였던가?
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우리들은 떠나야 했던 것이다.
14시간이나 타고가야하는 뱃길이 두렵지 않느냐고?
천만의 말씀,
뱃길은 우리가 왔을 때처럼 아주 잔잔할 것이라는 믿음이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어떤 어려움도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우리들은 이러한 자신감을 품고 우리를 일주일 전 우리를 태워다 주었던 Ambu-Ambu호에 올라탔다.
어쩌면 이곳에 다시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
Ambu-Ambu호는 뱃고동을 길게 울리고 항구를 떠나기 시작하였다. 우리들은 선교사님과 학생들이 보이지 않을 때 까지 손을 흔들었다.
이러한 감정은 정말 근래에 가져 본 적이 없는 것들이었다.
이 모든 감정들이 어우러져 낙원을 꿈꾸다라는 제목의 글이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獻詩, 낙원을 꿈꾸다>
야자수 너머 저 멀리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
맹그로브(mangrove) 나무숲으로 둘러싸인 섬들이
구름처럼 떠 있다.
저 풍광처럼 아름다운 세상을
나 여기서 이룰 수 있을까?
발목까지 빠져
장화신지 않고는 한 걸음 움직이기 힘든
질펀한 황토 뻘 위에
비 피할 수 있는 공간만 있어도 좋으니
그런 처소를 세울 수나 있을까?
빗물이라도 받아먹어야 살 수 있는
이 원시림 속에서
가냘픈 아녀자의 몸 하나 지탱할 수나 있을까?
조금만 움직여도 한낮 더위가
나를 꼼짝 사로잡아
무기력하게 만드는 이곳에서
주어진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한 걸음 내 딛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
저 밀림 속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른다.
모르는 자에게는 두려움이 있는 법,
해가 지고
그 많던 별들도 구름 속으로 사라지면
주위 온 세상은 암흑천지가 된다.
미지(未知)와 암흑이 주는 두려움을
어제는 용케 이겨냈지만
과연 오늘도 극복해 낼 수 있을까?
저렇게 천진난만한 눈망울을 가진
먼따와이(Mentawai) 원주민들이
속절없이 거짓말 하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물건을 예사로이 훔쳐간다.
나 정말 이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August Lett 선교사가
순교(殉敎)하면서까지
이 땅에서 이루려고 했던 그 일,
나 또한 그 일을 이루어 낼 수 있을까?
어느 새 서쪽 하늘 저녁놀이
바다 위에서 황홀하게 타고 있다.
이 곳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해 왔던
물음을 다시 해 본다.
나, 정말 여기에 그 낙원을 이룰 수 있을까?
* 2011년 2월5일 김덕규 글 쓰다.
* 인도네시아 먼따와이 제도 우따라섬에서 사역하시는
홍수희, 정필녀 선교사님께 헌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