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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5-14 14:33
엔도 슈사쿠의 <침묵(沈黙)>
 글쓴이 : 金德圭
조회 : 2,110  
<침묵>은 배교(背敎)를 주제로 한 신앙소설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다루기 힘든 아니 말하기 힘든 주제가 배교이다. 배교는 죽음 즉 순교(殉敎)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배교와 순교는 결국 동전 양면이다.

그리스도는 순교하셨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 순교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들은 누구나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지만 순교에 대해서는 결코 자유롭게 말 할 수 없다. 순교를 각오할 믿음이 자신에게 있는지를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을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지구촌 곳곳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를 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글쓴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앙에 대해서 그 어떤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쓸 수가 있지만  글쓴이는 앞서 언급한 그러한 이유로 인하여서  순교/배교에 관한 글을 쓰기가 두렵다. 그러하기에 많이 비겁하지만 책의 제목인 침묵, 즉 하나님의 침묵에 대하여 언급해 보기로 한다.

    "오직
    주님만 바라는 이 절대시간

    주님의 침묵이 아무리 내게 익숙하더라도
    나는 그 침묵에
    더욱 익숙해져야 한다"

위의 글은 어제 책을 읽기 전에 쓴 나의 글이다.
책을 읽기 전 내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인식에 대한 것 중 하나님의 침묵에 관한 내 속 마음을 드러내 보았다.

지금 엔도의 <침묵>을 다 읽고 난 나에게 이러한  침묵에 관한 생각이 과연 달라졌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달라지지 않았다.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는가?
우리는 종종 왜? 라는 질문을 하기를 즐겨한다.
왜, 왜, 왜,

사실 하나님은 이제 침묵하시고 싶으실 것이라는 마음이 솔직하게 내게 든다.
글쓴이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규정해 보라고 하면 글쓴이는 주저함없이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시다 라고 언급하고 싶다.

이러한 나의 주장이 틀린 것이 아닌 이유는 하나님 스스로 그렇게 계시하셨다.
아니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도 말씀으로 지으셨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성경에 기록되어 활자화되어있기에  오늘 날 언제든지 성경을 열어  읽어 보면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씀을 이미 다 하셨던 것이다.

이 제 무슨 이야기를 더 하시고 싶으시겠는가?

문제는 그 모든 말씀을 사람들이 믿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이 하셨던 그 무수한 말씀을 평소 귀담아 듣지 않고 있다가 자기가 필요할 때 자신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는 하나님을 몰아세우는 것은 아닌지
하나님은 침묵하신다고 하면서.

사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피조물인 사실을 잘 잊고 있다.
우리가 무슨 질문을 하면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은, 더구나 우리를 그의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모든 질문에 응답해야 할 의무가 있는 분으로 착각하기 쉽다.

아니 그렇다 하더라도 절대 절명의 순간에 한 번 쯤은 그 침묵을 깨시고 말씀한 번 해 주실 법도 한데 하나님은 우리의 강력한 의지의 표명과는 달리 침묵을 고수하신다.

소설속의 주인공인 ‘세바스티앙 로드리고’ 신부(神父)는 배교의 순간까지 자신이 끝없이 하나님께 던진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침묵을 깨고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내면의 소리로 듣는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은 지금 아플 것이다. 오늘 까지 내 얼굴을 밟았던 인간들과 똑같이 아플 것이다. 하지만 그 발의 아픔만으로 이제는 충분하다. 나는 너희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 그 것 때문에 내가 존재하니까.” 

신앙을 저버리도록 고문을 당하는 성도들의 말할 수 없는 고통 소리를 밤새도록 듣고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로드리고’ 신부가 이 내면의 소리를 듣고 배교를 결심하게 된다. ‘로드리고’ 신부는 자신이 스스로 배교하였음을 천하가 알도록 몸으로 보여 줘야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화를 자신의 더러운 발로 스스로 밟는, 배교행위를 실천하게 되는 것이다.

엔도가 저자 후기에 언급한 것처럼 이 ‘로드리고’ 신부의 깨달음-사실은 소설가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많은 신학적 논쟁을 가져 올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신학자가 아니기에 이에 대해 내 개인적인 생각은 있지만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로드리고’ 신부가 깨닫는 또 한 가지, 그 극심한 고통의 순간에 그리스도는 침묵하고 계시지 않았고 그 모두의 고통을 함께 겪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소설가 엔도는 그의 소설 <침묵>을 통하여 그가 믿는 하나님은 고통의 그 긴 순간에 침묵하셨던 것처럼 보이나 결코 침묵하지 않으셨고, 고통당한 사람들을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 들과 함께 고통당하셨다는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다.

그의 신앙고백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은 결국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글쓴이의 간절한 소원이 있다면 이 소설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침묵하시는 하나님”, “고통을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깨달음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다.

오직
주님 만 바라는 이 절대시간
 
주님의 침묵이 아무리 내게 익숙하더라도
나는 그 침묵에
더욱 익숙해져야 한다.

침묵으로 말씀하시는
주님의 침묵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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